주식 이야기를 조금만 들어도 PER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뜻은 간단합니다. 지금 주가가 회사가 1년에 버는 이익의 몇 배인가를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문제는 "PER 12배"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게 싼 건지 비싼 건지 감이 안 온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계산식보다 실제 분포를 먼저 보겠습니다.

1. 계산은 나눗셈 한 번

PER(Price Earnings Ratio, 주가수익비율)은 주가 ÷ 주당순이익(EPS)입니다. 주당순이익은 회사가 1년에 번 순이익을 주식 수로 나눈 값이고요. 주가가 12,000원이고 주당순이익이 1,000원이면 PER은 12배입니다.

이 12배를 읽는 가장 쉬운 방법은 "지금 이익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원금 회수에 12년"이라고 바꿔 보는 것입니다. 숫자가 클수록 회수가 오래 걸리니 비싸다는 뜻이고, 작을수록 싸다는 뜻입니다. 다만 이건 이익이 그대로일 때의 이야기라는 점이 뒤에 나올 함정의 씨앗입니다.

2. 한국 주식의 PER은 실제로 어디쯤인가

이익을 내고 있어 PER을 계산할 수 있는 1,627종목을 줄 세워 봤습니다. (전체 2,653종목 중 나머지는 적자거나 이익 자료가 없어 PER이 나오지 않습니다.)

7.3배하위 25%
13.2배중앙값
30.8배상위 25%
76.5배상위 10%

이 표가 알려 주는 건 기준선입니다. 어떤 종목의 PER이 7배대라면 한국 시장에서 아래쪽 4분의 1에 든다는 뜻이고, 30배가 넘으면 위쪽 4분의 1입니다. "PER 12배"는 딱 한가운데 근처라는 것도 이제 알 수 있습니다.

3. 낮다고 무조건 싼 게 아닌 이유 세 가지

첫째, 이익이 최고점일 때 PER은 가장 낮아 보입니다. 조선·화학·철강처럼 업황을 타는 회사는 좋을 때 이익이 몇 배로 뜁니다. 그 이익으로 나눈 PER은 5배, 4배까지 떨어져 매우 싸 보이지만, 업황이 꺾이면 이익이 먼저 줄어 PER이 도로 올라갑니다. 이런 업종에서 낮은 PER은 싸다는 신호가 아니라 사이클 위치 신호일 때가 많습니다.

둘째, 일회성 이익이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부동산을 팔았거나 자회사 지분을 정리해 한 해만 이익이 크게 잡히면 PER이 뚝 떨어집니다. 다음 해에는 그 이익이 없습니다.

셋째, 성장하는 회사는 원래 PER이 높습니다. 지금 이익이 작아도 몇 년 뒤 몇 배가 될 것으로 기대되면 시장은 미리 값을 매깁니다. 그래서 PER만으로 성장주와 가치주를 같은 잣대에 놓으면 성장주는 늘 비싸 보이고 사양 산업은 늘 싸 보입니다.

4. 그래서 어떻게 보나 — 세 가지 습관

같은 업종끼리만 비교합니다. 업종별 PER 중앙값은 자동차부품 6.2배부터 반도체 26.8배까지 벌어져 있습니다. 업종이 다르면 애초에 자를 바꿔 재는 셈입니다.

확정 이익인지 예상 이익인지 확인합니다. 작년 확정 실적으로 계산한 PER과 올해 예상 이익으로 계산한 PER은 다른 숫자입니다. 이익이 빠르게 늘거나 주는 국면에서는 두 숫자가 두 배 넘게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익의 질을 함께 봅니다. 같은 PER 10배라도, 매년 비슷하게 벌어 온 회사와 작년에만 반짝한 회사는 전혀 다릅니다. 3~5년 이익 흐름을 같이 보면 구분됩니다.

5. 실제 종목으로 한 번 나눠 보기 2026-08-19 종가 기준

말로만 보면 잘 안 붙으니, 우리 화면에 올라가 있는 숫자로 직접 나눠 보겠습니다. 아래 세 줄은 모두 같은 날 종가를 같은 방식으로 계산한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입니다.

종목종가주당순이익(EPS)PER
삼성전자247,500원7,570.8원32.7배
SK하이닉스1,500,000원60,220.5원24.9배
기아133,000원19,366.6원6.9배

같은 시장, 같은 날인데 6.9배와 32.7배가 함께 있습니다. 이 차이는 "누가 더 좋은 회사인가"가 아니라 시장이 각 회사의 이익이 앞으로 어느 쪽으로 움직인다고 보는가에서 거의 다 나옵니다. 이익이 줄어들 것으로 보면 지금 이익으로 나눈 PER은 낮아 보이고, 늘어날 것으로 보면 높아 보입니다.

계산이 맞는지 직접 검산할 수 있게, 이 사이트는 화면에 표시된 EPS로 화면의 종가를 나누면 화면의 PER이 나오도록 반올림 자리를 맞춰 둡니다. EPS와 BPS가 무엇인지는 EPS와 BPS에, 계산식 전체는 분석 방법론에 적어 두었습니다.

6. 확정 PER이 뒤집히는 순간 — 예측 이익과의 격차

앞에서 "확정 이익인지 예상 이익인지 확인하라"고 했는데, 그 격차가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 세어 봤습니다. 공시 원문을 확인해 심층 분석을 붙인 1,201종목 가운데 확정 PER과 예측 PER이 둘 다 있는 443종목에서, 예측 PER이 확정 PER보다 낮은 경우가 82.8%였고 격차의 중앙값은 -22.1%였습니다 (2026-08-19 기준). 반대로 예측 PER이 더 높은 경우도 76곳 있었습니다.

특히 확정 PER이 30배를 넘는데 예측 PER은 15배를 밑도는 종목이 22곳이었습니다. 이 구간이 "PER이 높으니 비싸다"가 가장 크게 어긋나는 자리입니다. 실제 사례로, POSCO홀딩스는 확정 38.6배 · 예측 12.7배, SK텔레콤은 확정 51.5배 · 예측 17.5배, 삼성전자는 확정 32.7배 · 예측 5.0배로 저장돼 있습니다(2026-08-19 기준). 확정 이익이 업황 저점이나 일회성 비용으로 눌려 있으면 PER은 저점에서 가장 높아 보입니다. 앞의 3장에서 말한 "고점에서 가장 낮아 보인다"의 정확한 반대편입니다.

다만 예측 이익은 증권사 컨센서스가 아니라 자체 추정치라 검증되지 않은 값입니다. 그래서 확정 지표와 항상 따로 표시합니다. 자세한 성격은 예측 PER은 무엇인가에서 다룹니다.

7. PER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의미가 없는 구간

적자면 PER은 계산되지 않습니다. 2,653종목 중 주당순이익이 마이너스인 곳이 1,001곳이라, PER이 나오는 종목은 1,627곳(61%)뿐입니다(2026-08-19 기준). 여기서 자주 놓치는 함정이 하나 생깁니다 — "업종 평균 PER"은 그 업종의 흑자 회사만 모은 평균이라는 점입니다. 적자 회사가 많은 업종일수록 평균이 실제보다 건강해 보입니다. 적자 종목이 많은 업종은 제약·바이오 83곳, 기계·장비 82곳, 게임·소프트웨어 77곳, 연구개발 59곳 순이었습니다.

반대편 극단도 있습니다. PER 50배를 넘는 종목이 269곳, 100배를 넘는 종목이 133곳입니다. 이익이 0에 가까워지면 나눗셈의 분모가 작아져 PER은 수백 배로 튑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확정 PER 576배로 저장돼 있는 것도 이익 규모가 작아서 생기는 숫자이지, "576년 걸린다"는 뜻으로 읽을 값이 아닙니다. 이 구간에서 PER은 사실상 정보량이 없습니다. 그래서 PBR이나 EV 배수처럼 이익 변동에 덜 흔들리는 자로 갈아타는 편이 낫습니다 (EV/EBITDA는 PER과 뭐가 다른가).

업종과 규모라는 두 개의 기준선. 표본 8종목 이상 업종의 확정 PER 중앙값은 육상운송 5.9배 · 전력·가스 6.8배 · 건설 7.4배부터 반도체 26.3배 · 로봇 43.5배 · 연구개발 50.4배까지 벌어집니다. 규모로 나눠도 마찬가지여서 시가총액 1조원 이상 종목의 중앙값은 24.6배, 1천억원 미만은 11.8배입니다 (모두 2026-08-19 기준). 소형주가 싸 보이는 것의 상당 부분은 규모에 붙는 할인이지 종목 하나하나가 저평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용어가 헷갈릴 때는 용어 사전을 참고하세요.

정리

본 글은 공개 데이터를 정리한 정보 제공 자료이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 권유나 투자자문이 아닙니다. 언급된 종목은 설명을 위한 예시일 뿐 추천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은 공시 원문을 직접 확인하고 본인 책임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데이터 출처

이 글의 수치는 금융위원회 주식시세정보·OpenDART·한국거래소 공개 데이터를 자체 전수 집계한 것입니다(계산식 공개).